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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스케치] 2015년 법륜스님 즉문즉설과 통일 이야기 19강 - 성남 수정청소년수련관 등록일 2016.05.11 22:22
글쓴이 관리자 조회 4511

“이번 강연은 통일의병이 주최한 것이니 개인 질문은 적게 다루고 공동체와  민족,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스님의 이야기가 끝나자 세 명이 손을 들고 질문을 청했습니다. 첫번째 질문자는 가정에 무관심한 남편과 사는 것이 행복하지가 않아 이혼하고 싶은데, 남편은 아이를 절대 줄 수가 없다고 해서 고민이라고 했고, 두번째 질문자는  본인이 납북자 가족인데 납북자 가족들에 대한 연구 활동을 해보고 싶지만 차일 피일 미루고 있다며 스님의 조언을 구했고, 세 번째 질문자는 군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요즘은 통일정책이 예전보다 통일에서 멀어지도록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스님께서 보시는 통일의 전망 그리고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또 국민들의 안보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방법도 함께 물었습니다. 

 

오늘 강연은 비가 와서 그런지 조용하고 가라앉은 듯한 분위기였고 시민들도 한껏 진중하고 집중된 모습으로 강연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두 번째 질문인 납북자 가족 문제에 대한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은 질문자와의 문답 속에서 분단이 한 개인의 내면과 가족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분단은 사회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내면 깊숙이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심리학 박사과정에 있습니다. 그런데 제 문제를 고민하다가 가족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됐어요. 저희는 납북자가족으로 아버지가 외아들이셨어요. 저는 이혼을 했는데 ‘가족이 다 겪은 외상으로 인해서 지금의 내가 고통 받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올라가면서 이 주제를 연구해보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납북자에 대한 관심을 사실 많은 분들이 갖고 있진 않아요. 또 이런 연구는 돈도 명예도 되지 않으니 다른 분들이 나서서 하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일을 겪은 가족의 일원이기도 하고, 제가 성인이 되었으니 아버지나 돌아가신 할머니의 마음을 좀 헤아려보고 싶은 마음에서 이 주제를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시간강사로 일하며 생계를 해결하느라 힘들고 제 그릇이 작다 보니 진척을 잘 못했습니다. 스님의 통일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납북자에 대한 관심이 더 이상 뒤로 미루어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통일과 관련된 많은 혜안을 가진 스님께서는 납북자 가족에 대한 생각이 어떠신지요? 스님의 말씀을 듣고 제 연구에 대한 자세와 태도와 생각을 정비하는 기회를 갖고 싶어서 여쭙습니다.”

 

“어떻게 납북이 되셨어요?”

 

“아버지가 태어나기 전에 할아버지가 납북되셔서 할머니께서 혼자 아버지를 낳아 키우셨어요. 할머니가 13형제 중 장녀였기에 굉장히 힘들게 살다 18살에 시집갔는데 19살에 남편이 납북되는 일을 당하신 거예요. 아들을 혼자 낳아 키우느라 너무 힘들게 키우셨고, 그런 어려움들 때문에 저희 부모님이 갈등을 겪고, 그러다보니 저도 자라서 부모님을 미워하고 남편과도 이혼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6.25 때 납북됐어요, 그 뒤에 납북됐어요?”

 

“6.25 때로 알고 있습니다.”

 


 

“전쟁 중에 그리 되셨다는 이야기네요. 그냥 납북이 된 거예요, 전쟁에 나갔다가 실종이 된 거예요?” 

 

“할아버지가 공무원이셨대요. 그런데 성정이 올곧아서 바른 말씀을 잘 하시다 보니 평소 마을에서 좀 못마땅해 하는 사람이 있었나 봐요. 점심 식사를 하다가 ‘잠깐 가자’는 호출을 받고 ‘죄 지은 것도 없으니 금방 다녀오겠다’ 하고 가셨는데 그 길로 이제...”

 

“납북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당시 남쪽 정부에서 고위직에 있거나, 과학자거나, 문학가거나, 예컨대 쓸 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데려가서 자기들 정부에 요직으로 앉히거나 중요한 기술자로 쓰기 위해 납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스스로 가는 월북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해방 전후의 그 당시에는 지성인 혹은 지식인 소리 듣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이 사회주의자였습니다. 당시 사회분위기가 그랬어요. 게다가 당시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친일 관료들을 다시 데려다 썼습니다. 경찰을 만들려니 일제시대 때 경찰하던 사람들을 데려다 쓰고, 행정을 하려니 일제시대 때 관리 했던 사람을 데려다 쓰고, 재판을 하려니 일제시대 때 판사 하던 사람을 데려다 쓰고, 군대를 만들려니 일제시대에 일본군인 하다 온 사람을 쓰게 된 거예요. 이렇게 친일파를 전문가라고 해서 복권시켜 등용하니 친일청산을 제대로 못한 겁니다. 

 

그런데 미국이 볼 때는 어쨌든 국가 재건을 하려면 기술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니까 일제 강점기 때 그런 기술을 갖고 일한 사람들을 재등용한 거예요. 미국이 한국의 독립과 자주성에 큰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요즘도 일본 재무장과 관련해 우리한테 ‘위안부니 뭐니 지나간 이야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 그만하라’ 이렇게 압력을 가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게 단순히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뼈에 사무친 이야기잖아요. 이렇게 서로 견해가 다른 거예요. 미국은 기술적인 면만 생각해서 등용했고, 우리가 보면 친일파가 죄다 재등용된 거예요. 해방될 때 다 죽을 줄 알고 숨어있던 친일파가 이렇게 등용되고, 또 당시 독립운동 한 사람들이 대부분 사회주의자다 보니 반발이 심했습니다. 그러니 다시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서 반공으로 분위기를 몰아가서 독립운동 한 사람을 거꾸로 공산주의자로 몰아 척결했어요. 이게 한국사회를 지금까지도 괴롭히는 갈등의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제가 물어보려고 하는 것은 할아버지가 그런 사람으로서 약간의 자발성을 갖고 북으로 갔는지, 즉 월북인지, 아니면 납치되다시피 끌려간 것인지 입니다. 거기에 따라서 또 평가가 다를 수 있어서 물어보는 겁니다.”

 

“후자였던 것 같고요. 그때 굉장히 젊으셨기 때문에...”

 

“북쪽에 간 뒤에는 어떻게 됐는지 연락이 일체 없고요?”

 

“수년 전 이산가족 찾기를 할 때 아버지께서 찾으려고 노력하셨어요. 처음에는 찾았다고 했는데, 행사 전날 동명이인이라고 통보받아 만남이 무산되고 굉장히 실망하셨어요. 그때까지는 할머니도 살아 계셨기에 마지막 기회라고 했는데 놓쳐서 굉장히 안타까워 하셨어요.”

 

“알았어요. 그러면 어쨌든 납북인 걸 확인했습니다. 6.25 전쟁 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참 많아요. 노근리 학살 사건이나 4.3 사건 등이 그렇죠. 그걸 지금까지는 ‘4.3 제주 반란’이나 ‘여수 순천 반란’으로 부르면서 죄다 일방적으로 매도했어요. 그래서 오랜 세월을 모함과 오해 속에서 보내야 했지만 억울한 사람들이 수십 년을 꾸준히 노력한 끝에 결국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들어와서 ‘제주도 양민 학살 사건’이라고 복권되었습니다. 광주 민주화 항쟁도 처음에는 폭동이라고 했지만 수십 년간 민주화 투쟁을 거친 끝에 ‘광주 민주화 항쟁’으로 복권되었고, 망월동 묘지도 국립묘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밝혀진 사건들은 가족이든 동지든 목격자든 너무너무 억울하다는 누군가가 온갖 모함과 핍박을 겪고 오해를 사면서도 남아서 줄기차게 자료를 모으고 증언을 채취했기 때문에 밝혀진 거예요. 이보다 더 많은 사건들은 아직 역사 속에 묻혀 있습니다. 나서서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 때는 진실화해위원회라고 해서 이런 피해자들의 하소연을 받아주고 재조사하고 재판도 다시 하도록 도와주는 국가 부서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명박 대통령 때 와서 다 없애버렸죠. 

 


 

질문자가 심리학을 전공했다니 납북자 가족들의 심리에 대한 연구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밥벌이는 청소를 하든 심리학 강의를 하든 질문자의 책임이고 자유예요. 밥벌이를 해결한 나머지 시간에는 틈나는 대로 납북자 가족들을 만나 사연도 듣고 심리를 연구해보세요. 그러면 질문자의 연구는 단순히 납북자 가족에서 그치지 않고 이산가족의 문제가 되고, 분단의 문제가 됩니다. 

 

또 질문자는 이산가족이 됨으로 해서 한 가정 안에 이 분단이 미치는 영향을 직접 체험했어요. 할머니가 남편 없이 혼자 사느라 정신적으로 힘들게 살아서 아버지를 키웠어요. 할머니가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힘들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심리적으로 당연히 불안과 억압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성장해 어머니와 결혼하니 자기의 그 업식이 아내를 상대로 폭발했어요. 어머니는 이런 남편을 만난 게 억울하니까 또 힘들어하며 질문자를 키웠고요. 그래서 질문자는 아버지에 대한 저항감이 생겼고, 남편을 만나 살다가 남편의 행동이나 어떤 부분이 계기가 되어 질문자가 아버지에게 가지고 있던 상처가 덧나서 자기도 모르게 저항하게 되고, 그래서 이혼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가정의 불화를 잘 살펴보세요. 분단이 됨으로 해서 우리가 말하는 여러 가지 국가적 불행만 발생한 게 게 아니라,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그 까르마가 쭉 이어집니다. 한 대(代)로 끝나는 게 아니라, 겉보기에는 멀쩡히 먹고 살지만 내재되어 계속 흘러내려가요. 질문자의 아이에게도, 손자에게도 계속 이어질 겁니다. 

 

질문자는 이런 문제를 심리학적으로 접근해 연구해보세요. 자기 가계니까 조사하기 쉽잖아요. 돌아가시긴 했지만 할머니가 어땠는지 아버지한테 이야기 들어서 조사하고 그것이 아버지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살펴보고요. 아버지의 그런 까르마를 어머니가 이해하고 수용해줬다면 질문자에게 전이가 안 됐을 텐데, 어머니도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저 억울하다고 대응하다 보니 까르마와 상처가 질문자에게 내려왔어요. 남편이 질문자를 수용해주든 질문자가 남편을 수용해줬다면 아이에게는 전이가 안 될 텐데 질문자도 상처를 어쩌지 못해 그게 아이에게 또 전이 되었어요. 아이가 방글방글 웃으니까 내가 이렇게 살아도 애한테 무슨 피해를 주는지 모를 뿐이에요. 조금 전에 스님이 이혼하겠다는 아이 엄마에게 엄마 자격이 없다고 말하니까 여러분들은 ‘스님은 애를 안 낳아봐서, 남자라서 저런 소리 하지’ 이런 생각하면서 억울하게만 여기지, 도대체 이 까르마의 흐름을 모릅니다. 

 


 

분단으로 인해서 납치가 일어났어요. 그리고 그 상처가 한 대에 끝나는 게 아닙니다. 심리학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는 문제예요. 이것이 요즘 말로 하면 ‘트라우마’입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다리 부러지고 팔 부러져서 돌아온 것만 치료를 했지, 사람을 죽이면서 느꼈던 마음의 충격이나 아픔은 치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군인들이 미국 사회에 적응 못하는 문제가 생겼어요. 그래서 육체의 상처처럼 정신에도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트라우마’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요즘은 무슨 사건이 생기면 몸만 치료하는 게 아니라 다 마음의 치료를 병행합니다. 교통사고가 나도 몸뚱이만 치료하는 게 아니라 놀람병을 치료해야 해요. 운전하다가 한번 사고를 당하면 다음에 운전대를 못 잡거나 차가 덜컹거리기만 해도 놀라는 것은 트라우마, 즉 정신적인 상처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트라우마가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컨트롤이 잘 안되는 거예요. 이런 점을 알아서 상처를 치유해가는 게 우리의 마음 공부입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경험한 자기 가계부터 연구해보고 예컨대 다른 가계 열 가족을 더 연구해보세요. 이 전체의 공통점은 뭐고 차이점은 뭔지, 열 가계 중 한 가계라도 이걸 극복한 사례가 있다면 그걸 어느 어에서 누가 어떻게 극복해냈는지, 나머지는 대부분 극복을 못 하고 유전인자 처럼 상처가 대를 이허 흘러내려가는 이유는 무엇인지 연구해보세요. 

 

그 까르마와 상처가 지금 우리 민족 전체 공동체에도 흘러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에서 태어나서 아버지가 일제시대 판사를 했던 사람의 예를 들어볼게요. 광복된 뒤에 공산주의자들이 들어오더니 ‘친일 청산’이라고 해서 아버지를 잡아가고 재산을 몰수해버렸어요. 아이 혼자 살아남아서 남쪽으로 도망왔습니다. 그러면 이 상처 때문에 ‘공산주의’라고 하면 ‘무조건 때려죽일 놈, 철천지원수’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을 보고 비상식적인 극보수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안 돼요. 그 사람은 그런 상처를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제의 지배와 분단, 좌우 대립으로 인한 전쟁, 그 이후 남과 북 모두에 들어선 독재 정권들, 이런 역사가 사람들에게 준 상처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통일이 돼야 역사도 바로잡히고 이 상처도 치유가 되는 거예요. 지금은 그런 이야기 해봤자 동조할 사람이 없으니까 저도 요즘은 통일 되면 경제적으로 큰 이익이라는 이야기를 주로 하지만, 실제로는 이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엄청납니다. 통일은 이걸 청산할 수 있어요. 

 


 

그러니 질문자가 가족의 입장에서 이것을 연구하는 것은 통일에도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남북의 정치문제 같은 건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질문자는 자기 문제, 즉 나의 상처로부터 출발해보세요. ‘이 상처가 결국은 민족의 상처로부터 왔다. 사회로부터 나에게 오고, 이런 우리들이 모여서 또 사회의 상처를 온존시켜간다’ 이런 것을 연구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연구로 박사 학위 따겠다거나 돈 벌 생각은 하지 마세요. 꾸준히 30년 연구해서 나이가 60, 70 쯤 되면 전문가가 될 수 있어요. 아무도 안 알아줘도 통일된 뒤에는 ‘아, 그 분이 이런 아픔을 연구해서 이렇게 정리해 놓았구나’ 하고 알아줄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걸 해서 밥벌이로 삼겠다고 하면 관심없는 정부에 대해 실망하여 불평하고 자신을 한탄하게 돼요. 

 

소재는 아주 좋습니다. 그건 질문자가 인생을 어떻게 살 거냐 하는 문제예요. ‘그런 거 연구해서 뭐하나. 그건 밥이 안 된다’ 해서 자기 밥벌이만 할 수도 있지만, 요즘은 한국 사회가 그래도 살 만한 사회니까 통일부 같은 곳에 프로젝트를 제출해 볼수도 있어요. 나의 아픔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분단이 가져온 우리의 아픔을 살펴보고, 앞으로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이 사람들의 치유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아우를 수 있잖아요. 통일부나 통일 관련 단체에 그런 프로젝트가 선정되면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되고 연구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프로젝트를 준다는 보장이 전혀 없잖아요. 그러니 먹고 사는 건 질문자가 해결하고, 프로젝트 제출은  계속하고, 연구도 꾸준히 계속하라는 겁니다. 스님도 이런 통일 강연을 누가 돈 대줘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맞는 말씀인데요. 제가 그릇이 좀 작고 불안감이 굉장히 높은 사람이어서 아직은 어렵습니다.”

 

“그릇이 작으면 안 하면 되죠. (청중 웃음) 할 수 있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어요. 질문자가 그 연구를 하려면 그런 방향으로 해나가면 되고, 못 하겠다면 그냥 안 하면 됩니다.

 


 

그런데 핵심은 이거예요. ‘내 괴로움이 이산가족 때문에 생겼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그 출발점은 맞는 말이긴 하지만, 내가 사생아로 태어났든, 이산가족 집안에서 태어났든, 성추행을 당했든, 과거는 다 지나간 이야기예요. 지금 나는 그런 우여곡절을 겪고도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수 있어요. 수행자라면 이렇게 해탈을 해야 해요. 내가 먼저 행복해진 뒤에 이런 문제를 연구하는 건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런 배경이 있기에 나는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라고 자기의 괴로움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라면 그런 연구를 맨날 해봐야 나한테 하나도 득이 안 됩니다. 저도 제가 어떻게 고문당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끝도 없어요. (청중 웃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과거에 내가 어떻게 살았든 지금의 나는 행복해야 합니다. 과거는 너무 따질 필요가 없어요.”

 


 

“네, 그런 차원에서 그 연구를 하겠다는 쪽으로 생각을 굳히려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길게 보려 하고, 이걸로 돈을 벌거나 하는 건 아예 생각하지 않고요. 스님께서 방금 해주신 말씀도 잘 이해했습니다. 재미있게 연구해 보겠습니다.” (청중 웃음과 박수)

 

환하게 웃는 질문자를 향해 청중들은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오늘 강연에서는 통일 문제를 심리적인 측면과 가족적인 측면에서도 바라볼 수 있어 참 유익했던 것 같습니다. 

 


 

세 명의 질문 밖에 받지 못했는데 벌써 약속한 2시간이 모두 흘렀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강연을 마치면서 스님은 ‘코리아 리스크’와 ‘코리아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면서 왜 지금 이 시기에 통일의병 운동이 필요한지 다시 한 번 강조해 주었습니다. 

 

“국제사회에서는 ‘코리아 리스크’라는 것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괜찮은 나라임에도 국제사회에는 저평가가 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투자했다가 한반도에 전쟁이 났다 하면 완전히 죽이 되니까요. 남북 갈등 때문에 제대로 평가를 못받고 있어요. 그런데 만약 통일이 되면 코리아 브랜드가 굉장히 올라갑니다. 삼성, 현대 이런 대기업들은 자기들 이름으로 세계에 알려졌지 코리아 브랜드로 세계에 알려진 게 아니에요. 그런데 코리아 브랜드가 높아지면 우리가 독일제라고 하면 신뢰를 하듯이 세계 사람들이 한국제라고 하면 신뢰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에 있는 모든 중소기업들이 경쟁력을 가지게 됩니다. 지금은 삼성과 현대와 같은 특정한 재벌 기업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지 중소기업은 자기 브랜들를 만들 수 없어요. 코리아 브랜드를 만들어야 전체 산업이 다 살 수가 있습니다. 

 


 

이런 희망적인 미래는 우리가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럴려면 통일을 강력히 추진할 정부를 국민의 힘으로 구성해내야 합니다. 민간이 어떻게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통일은 정치, 외교, 군사, 경제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가 딱 통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치 군사적으로 완전히 통일되는 것은 지금 당장 급한 것이 아니에요. 통일을 하겠다고 정부가 방침을 정하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그렇게 되면 바로 교류 협력을 시작할 수 있어요. 정치 군사적인 통일은 시간이 좀 더 걸릴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니 우리는 중국을 보고 좀 배워야 해요. 중국은 대만이 독립만 하지 않으면 자유롭게 풀어주고 30년이고 50년이고 기다려 줍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통일된 것과 똑같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도 사실상의 통일을 먼저 하고, 정치 군사적인 통일은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선택할 때까지 시간 여유를 주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경제통합입니다. 남북 경제통합을 해야 남한도 빨리 경제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너무 빨리 통합을 하려고 무리수를 두어서는 안 됩니다. 북한 주민들의 소득수준을 우리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합니다. 하자고 해도 안 할 판입니다. 우선 경제 통합을 해야 됩니다. 경제 통합만 되어도 엄청난 이익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무를 심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들에게 일당을 하루 5만원은 줘야 하는데, 지금은 일당이 하루 천원 밖에 안되기 때문에 저렴한 비용으로 북한 전역에 나무를 심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선투자라고 합니다. 통일이 당장 안 되더라도 이렇게 나무 심는 것과 같은 비군사적인 분야에서의 투자는 지금이라도 해야 합니다. 돈도 적게 들 뿐만 아니라 나무가 자라는데는 또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전을 가진 지도자가 우리 민족을 이끌도록 여러분들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행동해야 합니다. 이런 입장을 국민들이 가지고 강력하게 요구하면 모든 정치세력들이 통일 방안을 만들어 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특정한 정치 세력의 하수인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북한은 주민이 지도자를 선택할 권한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헌법 제1조 1항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잖아요. 국민이 정부를 구성할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바로 국민이 통일 지향적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겁니다. 

 


 

이제는 평화 통일 정책이 선거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야가 다 평화 통일 정책을 갖고 경쟁을 하게 되어서 그 내용이 비슷해지면 이제는 누가 당선이 되어도 상관이 없게 됩니다. 이렇게 비슷하게 되어야 야당이 여당의 발목을 잡지 않고 국회에서 합의를 해주게 될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으면 한쪽이 추진해도 다른 한쪽이 반대해서 국론 분열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니 국민이 각성해야 이 문제가 해결되지 그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통일의병 만들기 운동을 하는 거예요. 국민이 일어나서 나라의 운명을 개척하자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 통일의병에 참여해야 되겠죠? 강연장 나갈 때 다 등록하셔서 성남에서부터 통일운동이 일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알았죠?”

 

“네!”  

 

스님의 간곡한 호소에 모두들 큰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2시간 동안 열정적인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 

 

<출처 - 정토회 홈페이지 스님의 하루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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