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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스케치] 2016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과 통일 이야기 - 4강(목포) 등록일 2016.05.11 22:26
글쓴이 관리자 조회 4839


 
황금연휴 한 가운데 5월 6일에는 목포에서 통일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즉문즉설  중에서 교회에 다닌다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어떻게 하면 기독교인으로서 통일의 씨앗을 뿌리고,

내년 대선 때 통일의 붐을 일으킬 수 있는지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내년에 대통령 선거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전국적으로 통일의 붐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저는 기독교인이고 교우들과 함께 스님의 강연을 들으러 왔습니다. 호남인들의 정신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한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 20대 총선에서 호남인들은 기존과는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소위 말해서 전략적 투표라는 것을 했는데, 그 속에는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며 통일을 염원하는 정신이 깃들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런 호남인들의 마음을 대변해줄 후보를 찾아야 하는데 어떻게 그런 후보를 알아볼 수 있고, 또 통일운동의 붐은 어떻게 일으킬 수 있을까요? 

 

사실은 저만 보더라도 통일을 의례적으로 바라왔지 마음 속에 씨앗 같은 것이 심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특히 교우들과 같이 왔으니까 기독교인으로서 종교인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하나씩 하나씩 얘기해 보겠습니다. 우선 종교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학교 선생님들을 전국적으로 다 모아서 학생들을 때리는지 안 때리는지 조사를 했을 때 개신교인들은 거의 때리지 않고 불교인들은 대부분 때린다고 하는 이런 차이가 있을까요? 종교만 갖고는 그런 차이가 안 나타날까요?” 

 

“안 나타날 것 같습니다.”

 


 

“남자들이 술먹고 주정을 많이 하잖아요. 술주정 하는 사람들만 전국적으로 1만 명을 모아서 종교 분석을 해보니까 불교인들의 비율이 엄청나게 높고, 천주교인들은 조금 밖에 안 된다는 이런 차이가 있을까요? 별 차이가 없을까요?” 

 

“크게 차이가 없을 것 같습니다.”

 

“연말에 자기 월급의 일부를 기부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자신의 종교 단체에 기부하는 것 말고 사회에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에 기부하는 것을 놓고 봤을 때, 기부를 얼마나 했는지 종교인별로 조사를 해봤더니, 기독교인들은 월등하게 많이 기부하고, 불교인들은 조금만 기부한다든지 하는 차이가 크게 있을까요?”

 

“크게 차이가 나진 않을 것 같아요.”

 

“전국에서 도둑질 하거나 폭행하는 사람들을 전부 잡아서 조사를 해봤더니 불교인들은 거의 없는데 기독교인들이 대부분이라든지, 종교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든지, 이런 차이가 확실히 나타날까요? 통계적으로도 오차 범위 안에서 별 차이 없이 그만그만 할까요?” 

 

“그만그만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불교인이다’,‘ 개신교인이다’, ‘천주교인이다’, ‘무교이다’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개인이 ‘나는 하느님 믿는다’, ‘나는 부처님 믿는다’ 하는 것이야 개인의 마음의 문제일 수가 있는데, 사회적으로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겁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부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과연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가 올 것이며, 국민의 90%가 불교인이 된다고 해서 과연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가 오겠느냐 하는 겁니다. 종교를 확대해 나간다는 것이 단지 패거리 경쟁밖에 안 된다고 할 때, 본인에게는 그 믿음이 소중하다 할지라도 사회적으로는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겁니다. 그러니 불교인이 몇 명이다, 개신교인이 몇 명이다, 천주교인이 몇 명이다 하는 숫자가 과연 중요한지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비록 그 숫자가 적더라도 조사를 해봤더니 개신교인들은 확실히 범죄율이 떨어진다든지, 불교신자들은 특별히 기부를 많이 한다든지, 사회적인 준법 정신이 확실히 차이가 난다든지 해서 '이런 사람들의 수가 늘어난다면 우리 사회 전체가 좋아지겠다' 하는 정도가 되어야 종교를 따지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아니겠어요?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많으면 뭐하고, 절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으면 뭐합니까? 그래서 종교는 필요없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에요. 개인이 종교를 믿는 건 믿더라도 지금과 같이 믿는 것은 사회적인 기여도가 별로 없다는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종교인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질문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북한이 저렇게 못된 행동을 할 때, 세속 사람들은 ‘저런 놈들은 굶어 죽어야 돼’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기독교 정신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해선 안 되지요. 자신을 십자가에 매단 사람에 대해서 저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주여,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두 놈은 지옥에 확 쳐넣어 버리세요’ 이렇게 할 텐데, 예수님께서는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이렇게 말했단 말이에요. 보통 사람은 그렇게 할 수가 없죠. 그래서 저는 그 분이 하느님이라고 보는 겁니다. 그 분이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고 그 분이야말로 하느님인 이유는 하느님만이 그런 마음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이전의 하느님은 어땠습니까? 자기 말 안 들었다고 유황불로 확 지져버리고 소금 기둥으로 만들어버리고 보복을 했잖아요. 그러니 예수님 이후의 하느님은 징벌의 하느님이 아니고 사랑의 하느님이고 용서의 하느님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런 용서의 하느님을 믿고 있나요? 

 

북한이 저렇게 못된 짓을 하더라도 거기 사는 아이들이 굶어죽는다면 마땅히 인도적 지원을 해야잖아요. 이것은 종교에 관계없이 유엔 헌장에도 ‘인도적인 지원은 정치, 이념, 사상, 종교에 관계없이 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도적 지원을 못한다 할지라도 종교인들은 해야할 것 아니에요?

 


 

그럼 불교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만약 우리 아들이 전교에서 1등을 한다고 하면, 자기 실력으로도 명문 대학에 갈 수가 있겠죠. 이런 아들을 둔 부모가 ‘우리 아들 명문 대학에 보내주세요’ 하면서 하루에 천배씩 기도를 할까요? 안 하겠죠. 그런데 아이의 성적은 턱없이 못 미치지만 명문대학에는 꼭 보내고 싶은 부모는 어떨까요? 절에 가서 죽기 살기로 기도를 합니다. 만약에 부처님이 그런 기도를 들어줬다고 합시다. 저는 그런 기도는 안 들어주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부처님이 이런 기도를 들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원 외에 입학을 시켜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정원 외에 받아주는 경우는 없잖아요. 그러니 성적이 되는 아이는 교회 다닌다는 이유를 들어서 빼버리고, 이 아이는 절에 다닌다는 이유로 넣어 주어야 하는 겁니다. 그럼 이것은 부정입학이잖아요. 돈을 받거나 해서 부정입학시켜주는 방법밖에 없는데, 이것은 입시 브로커들이 하는 행동이잖아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입시 브로커가 되어야 이 소원이 성취된다는 겁니다. 부처님이 입시 브로커가 안되면 이 소원은 도저히 성취될 수가 없는 거에요. 그런데 교회나 절마다 ‘기도해서 이런 소원이 성취되었다’고 하면서 자랑을 하잖아요. 이런 걸 써서 붙여 놓으면 저는 금방 ‘아, 저기에 모신 부처님은 입시 브로커구나’ 하고 알아봅니다. 이런 걸 부처님의 가피다, 하느님의 은혜라고 말한다는 겁니다. 

 

옛날에는 부정입학을 많이 했는데, 요즘에는 인간 세상에서도 부정입학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있더라도 공개적으로 하지 못하고 숨어서 하잖아요. 그런데 아직도 종교에서만 부정입학을 공개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예 모집을 하잖아요. ‘여기 와서 기도하면 좋은 대학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고요.(모두 웃음)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또 이렇게 말해요. ‘그런 기도도 안 들어주면 종교를 왜 믿느냐?’.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이 믿는 부처님과 하느님은 다 입시 브로커 수준에 불과한 거에요. 저는 이렇게 보는 것이 훨씬 솔직하다고 봐요. 스님이라고 불교 편을 드는 게 아니라 불교나 기독교나 다 똑같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 오늘날 북한이 저렇게 나쁜 행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굶어 죽는다면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것을 반성하지 않고, 독도를 아직도 자기네 땅이라고 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도 제대로 안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일본에 지진이 나서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는다면 그런 일본에 대해서도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합니다. 보통 사람은 그렇게 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은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누구든 관계 없이 인간이 고통에 처하면 도와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내 형제가 아니고, 내 나라 사람이 아니고, 나와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불행에 처했을 때는 도우라는 것이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제는 생각을 좀 바꾸셔야 해요. 현재와 같은 종교는 오히려 통일에 도움이 되기 보다는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종교인들이 이런 반성을 한다면, 이제는 종교의 본분으로 좀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5리를 가자 하면 10리를 같이 가주어라’ 하는 정도는 고사하고 문지방이라도 넘는 시늉을 좀 해주면 좋겠다 싶어요. 그런데 지금은 노골적으로 내가 왜 가야 하느냐고 항의하는 수준입니다. 

 

다음으로는 지금 우리나라 국민들이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젊은이고 늙은이고 할 것 없이 다 제 살기 바빠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봤을 때는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각기 개인들에게 물어보면 쪼들려서 죽겠다고 그래요. 쪼들려서 죽겠다고 하면서도 TV는 좋은 TV를 사고, 좋은 신발을 사고, 그러면서 또 죽겠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래서 저 또한 죽겠다는 말이 별로 믿어지지는 않는데, 아무튼 죽겠다고 그래요.(모두 웃음)     

 


 

또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죽겠다고 그래요. 결혼한 사람은 남편과의 갈등 때문에 못 살겠다고 난리에요. 또 부모님 모시고 사는 분들은 부모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고 그래요. 경제적으로나 인간 관계에서나 전부 자기 살기도 힘들어 해요. 이렇게 자기도 못 살아서 죽겠다고 하는데 지금 통일 이야기한다고 해서 귀에 들어오겠습니까. 그런데 질문자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얘기를 지금 전국적으로 어떻게 확산시키느냐 물은 거잖아요. 그런 방법은 없어요. 이 질문은 너무 과대망상적인 질문이에요. 

 

그러나 아무리 사람들이 힘들고, 자기 살기도 바쁘지만,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통일 문제를 해결하면 우리에게 굉장한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바빠서 신경을 못 써서 그렇지 조금만 따져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다만 국민의 1%만이라도 각성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겠습니까?’ 이렇게 묻는다면 ‘그건 방법이 있을 수 있다’라고 제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전국민이 통일에 관심을 갖는 그런 방법은 없겠느냐?’ 라고 묻는다면 그건 저도 몰라요. 그런 방법이 있었으면 지난 대선에서 벌써 해결해 버렸겠죠. 그 때 못해서 오늘도 여기까지 내려와서 강의를 하잖아요. 저도 내년 대선에서 통일에 대한 불길이 확 붙었으면 좋겠지만 그 방법을 저도 모르겠어요. 

 


 

다만 저는 질문자처럼 ‘바람이 확 불어라’ 하는 건 안 바라고, ‘100명 중에 1명 정도는 동조를 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 명이니까 그 중에 50만 명만 ‘통일이 되어야 우리가 발전할 수 있고, 우리의 미래가 있다’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면, 내년 대선에서 이 50만명이 커피를 사주든 밥을 사주든 해서 1명만 더 방향을 바꾸게 하면 100만표가 될 수 있죠. 지금까지 대선을 보면 늘 근소한 차이로 승부가 결정났는데, 100만표 정도면 당락을 좌우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내년 대선에 대한 꿈을 이 정도로 소박하게만 가져요. 그런데 이것도 잘 안 돼요. 질문자가 원하는 것처럼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는 방법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예. 잘 알겠습니다.”(모두 웃으며 박수갈채) 

 


 

“너무 비관적으로 얘기해서 죄송합니다.(웃음) 우리의 성격도 마찬가지에요. 너무 쉽게 바꾸려고 하기 때문에 작심삼일이 되는 겁니다. 성격은 바꾸기가 어려운 건데 너무 쉽게 바꾸려고 생각하니까 삼일만 하다가 관두게 됩니다. 그렇다고 ‘성격은 못 바꾼다’라고 단정을 해버리면 운명론에 빠지게 됩니다. 운명은 정해져 있다는 얘기가 되니까요. 그러나 성인의 가르침은 ‘성격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쉽지가 않다’라는 겁니다. 바꿀 수 없다고 하면 희망이 없어지고, 바꿀 수 있다고 단정하면 누구나 노력을 하게 되는데 그게 잘 안 바꿔지니까 좌절을 해서 그만두게 됩니다. 그러나 ‘바꿀 수 있지만, 바꾸기가 어렵다’라고 안다면, 3일만 계획을 세울 게 아니라 적어도 3년 계획은 세우게 됩니다. 그것도 바뀐다는 것이 아니라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로 목표를 세우게 됩니다. 대신 꾸준히 해야 되겠죠. 그렇게 하면 안 바뀐다고 좌절하지 않고, ‘쉬운 게 아니야’ 하면서 꾸준히 할 수 있습니다. 

 


 

그것처럼 통일운동도 단박에 하려고 하면 안 되고 꾸준히 해야 합니다. 개인의 운명도 바꾸기가 어려운데 통일은 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문제잖아요. 사람에 비유하면 개과천선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라의 운명을 바꾸려면 그 목표를 향해서 꾸준히 해나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왜 지난 수십 년 간 통일운동을 해오던 사람들이 다 나가떨어졌을까요? 욕심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확 해버리려고 했는데 그게 안 되고 또 안 되고, 반복이 되니까 ‘안 되나 보다’ 하고 다 나가떨어진 겁니다. 독립운동도 처음에는 여기저기서 열심히 했지만, 일본이 점점 강해지니까 1940년대에 와서는 독립운동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동안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전부 친일을 하게 됩니다. 사실은 그 때야말로 독립이 가장 가까워진 때였는데 말이죠. 즉, 밤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새벽이 가까워진 것이듯이 어쩌면 통일의 희망을 잃은 지금이야말로 통일에 더 가까이 다가와 있는 건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잃지 말고 꾸준히 해야 됩니다. 

 

선거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좋은 사람인가’ 하고 살피면 찍을 사람이 없기 때문에 투표를 안 하러 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제가 뭐라고 강조했나요? ‘어느 후보가 더 나쁜가’ 하고 살피면 금방 구분이 된다고 강조했잖아요. 가장 나쁜 사람 한 명을 빼고 아무나 찍으면 된다고 하니까 쉽잖아요. 그래서 꼭 ‘이 사람이 최고다’ 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결과가 좋아지는 게 아니에요.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야, 이 정도만 되면 좋겠다’ 싶은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투표하러 가는 것도 얼마나 신이 날까요. 그러나 그런 사람이 없어도 나라가 좋아지는 길이 있다는 겁니다. ‘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이것만 분명히 해도 더 나빠지는 것은 막을 수 있습니다.   

 

이번 20대 총선 결과가 좋았다고 이후에도 더 좋아질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 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멈춰세웠을 뿐입니다. 잘못된 정책을 계속 밀고나가는 것은 일단 막았어요. 이것만 해도 성공이에요. 그렇다고 앞으로도 잘 갈 건지는 섣불리 말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정치인들이 선거결과를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선거가 말해주는 표심이 무엇인지를 딱 직시할 수 있다면 금방 정신을 차리고 거품도 꺼지게 되는데, 반성을 하지 않으니까 나쁜 쪽으로 계속 갈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최악을 막았다는 것만 해도 대성공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번 성공을 잘 기억한다면 다음 대선에서도 최악을 막기 위한 차악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해요. 틀림없이 내년 대선에서도 세 명이 나와서 경쟁하게 될 거에요. 민심을 생각해서 두 명이 손을 잡아주면 좋은데 지금까지 보여준 성질들을 보면 아마 이번에도 세 명이 끝까지 갈 겁니다. 세 명 다 각자가 성공한 경험들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혼란스러워질 겁니다. 그럴 때 여러분들은 이번 선거 때처럼 어부지리로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잘 찍어야 됩니다. 그렇게 투표를 하면 국민이 결정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헤아려야 하는데 그들은 자기 이익에 눈이 멀어서 국민을 편안하게 안 해주니까 방법은 국민들이 머리를 굴려서 교통정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지금 이렇게 강연회를 열고 있는 거예요. 무슨 큰 희망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고, 최악을 막기 위해서는 이렇게 정리를 해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춘추전국시대가 되었잖아요. 예전처럼 뚜렷한 대선 후보가 있고 그것을 반대하는 세력이 있는 게 아니라 이번 선거를 거치면서 다들 도토리 키재기 하는 식으로 나오게 됐으니까 앞으로 조금 더 지켜보면서 이런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주권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국민에게 있습니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기 때문에 나라가 잘못되면 대통령이 비판을 받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들도 책임을 져야 해요. 왕조 사회는 왕이 국가의 주인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다 왕의 책임이었는데, 대한민국은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니까 우리가 투표를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기 때문에 정치인들만 욕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책임이에요. ‘나는 그 사람 안 찍었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연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인이다’ 하는 자각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경상도와 전라도는 이런 주인의식이 좀 부족했어요. 무조건 특정 정당의 말뚝만 보고 찍어주었어요. 그런데 이번 총선의 가장 큰 성과는 주인의식이 생겼다는 거에요. 결정은 국민이 하지 말뚝이나 깃발만 꽂으면 결정되도록 하지 않았거든요. 깃발이 결정을 하도록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지난 공천 파동처럼 난장판이 된 겁니다. 어느 당에서 공천받느냐에 따라서 선거결과에 관계 없이 결정되어 버렸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선거 개표할 때 재미있었죠? 누가 될지 몰랐잖아요. 그게 바로 여러분들이 결정권을 되찾은 결과입니다. 예전에는 개표를 하나마나 전라도와 경상도는 그 결과를 볼 필요가 없었잖아요. 북한은 99%를 지지하고, 경상도와 전라도는 70% 정도 지지하는 차이 밖에 없었지 당이 그냥 내리꽂으면 된다는 측면에서는 같았어요. 그래서 이번에야 비로소 여러분들이 주권을 되찾은 겁니다. 축하를 드립니다.”(모두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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