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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평화재단소식] 현안진단 제196호 - 북·미간 새로운 방식의 비핵화 빅딜이 필요하다(10.10일자) 등록일 2018.10.25 13:48
글쓴이 관리자 조회 84
평화연구원 현안진단
2018년 10월 10일 (수)

 북·미간 새로운 방식의 비핵화 빅딜이 필요하다

 

종전선언과 영변 핵시설의 교환은 ‘스몰딜’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으로 북·미간 비핵화 협상의 교착국면 해소를 위한 계기가 마련되었다. 당일치기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은 김정은 위원장 면담이 목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북·미간 이견의 조정이나 실무협상이 아닌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에 대한 ‘확약’이 무엇보다 중요했을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 직후 미 국무부는 김정은 위원장이 풍계리 핵 실험장 폐기 확인을 위한 사찰단을 초청했다고 밝혔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입에서 나온 사찰에 대한 최초의 공식적 언급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미 ‘평양공동선언’에서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를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계기로 종전선언과 영변 핵시설을 등가물로 교환하는 협상이 이루어졌을 개연성이 있다. 영변 핵시설은 북한 현재핵의 핵심인 원자로와 재처리 및 농축시설을 포함하고 있다. 북한이 미래핵인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에 이어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의 해체에 착수했다는 점에서 다음 단계 현재핵의 비핵화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으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가시화하고 있으며, 그 동안 북한의 집착을 고려할 때 북·미 정상회담의 재개는 종전선언의 성사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북·미간의 스몰딜의 수준을 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종전선언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입구일 뿐이며 불가침을 포함하는 항구적 평화상태의 달성, 즉 한반도 평화협정의 길은 아직 요원하기 때문이다. 영변 핵시설은 북한 현재핵의 핵심시설이지만 북한의 다른 지역에도 우라늄 농축시설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핵의 다른 핵심분야인 ICBM 제조시설은 더 복잡한 문제를 야기할 개연성이 있다. 북한의 단거리 및 중장거리, 그리고 ICBM 제조시설은 상호 긴밀히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문제의 핵심은 과거핵이다. 과거핵은 이미 생산한 핵물질, 핵탄두, 그리고 ICBM 등 운반수단이다. 과거핵은 당장 쓸 수 있는 무기라는 점에서 비핵화 협상에서 북한이 핵심적 레버리지로 활용할 수 있다. 과거핵 폐기는 북한 비핵화의 성공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영변 핵시설의 폐기와 종전선언이 등가물로 교환된다고 해도 보다 중요한 과제가 남아 있는 셈이다.

 

비핵화 방식에 대한 북·미간 이견

 

 북·미간 이견이 반복되는 근본적 원인은 비핵화 방식에 대한 큰 틀의 합의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는 신고-검증-폐기를 내용으로 하는 사찰 매뉴얼 방식이다. 매뉴얼 방식은 초기에 북한 핵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으며 투명하게 비핵화를 진행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에 매뉴얼 방식을 적용하는 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상존한다. 우선 핵연료의 채취에서 농축, 재처리 그리고 운반수단의 제조 등 핵무기생산 일관체계를 갖춘 북한과 같은 자발적 핵보유국에 대한 매뉴얼 방식에 따른 비핵화 사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방대한 규모의 북한 핵시설 및 폐기의 기술적 문제를 감안했을 때 단기간 내 완전한 비핵화도 어렵다.

 

 매뉴얼 방식의 보다 큰 문제는 당사자인 북한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선 신고단계에서 북한 핵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신고내용의 진위여부를 둘러싼 논쟁의 가능성이 있다. 또한 북한은 제한된 장소와 분야를 공개하길 원할 것이며, 미국은 제한이 없는 검증방식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마찰의 가능성이 있다. 신고단계의 이견으로 협상이 파기될 경우 북한은 성과 없이 자신들의 핵능력만 공개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신고단계에서의 협상파기는 이미 과거 북·미 비핵화협상에서 경험한 바다. 신고단계가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해도 비핵화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대북제재의 해제와 체제보장 조치가 단행되기도 어렵다. 매뉴얼 방식을 북한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이다.

 

 북한이 선호하는 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시행한 자발적 비핵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자발적으로 비핵화 조치를 실시한 이후 NPT 가입 및 IAEA의 사찰을 받아들였다. 검증과정에서의 잡음에도 불구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핵폐기 1년, 검증 2년 등 비교적 단기간 내 비핵화 전 과정을 마무리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와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의 해체, 그리고 영변 핵시설의 영구폐기 제안 등의 조치는 모두 북한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자발적 비핵화에 해당한다.

 

 하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북한은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핵프로그램은 농축방식의 핵물질 제조시설과 7개가량의 원자탄급 핵탄두 등 상대적으로 단순했다. 반면 북한은 농축과 원자로를 이용한 재처리 등 2가지 방식의 핵물질 제조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운반수단인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제조시설까지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핵프로그램이 방대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비핵화의 대가로 체제보장과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으나 북한은 비핵화조치를 단계화하여 상응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자발적 비핵화의 가장 큰 문제는 비핵화 완료시점 이전까지는 북한 핵프로그램의 전모를 알 수 없으며, 궁극적 비핵화의 신뢰성을 사전에 검증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북한의 일방적인 자발적 비핵화는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방식이다.

 

북·미간 ‘시퀀스 방식’의 빅딜이 현실적 대안이다

 

 종전선언 이후 가장 중요한 과제는 비핵화의 큰 흐름을 결정하는 빅딜, 즉 북·미간 이견을 보이고 있는 비핵화의 방식에 대한 합의이다. 양측의 이견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자발적 비핵화 방식과 미국의 프론트로딩(front loading)방식을 결합하는 절충안이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자발적 비핵화 방식을 일부 수용하되 주요 비핵화의 시간표와 절차에 합의하고, 핵심적인 비핵화를 조기에 선행하는 일종의 ‘시퀀스 방식’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북한 비핵화의 시간과 단계를 서너 덩어리의 완결된 핵심부분으로 나누어 진행하는 시퀀스 방식은 신고에서 출발하는 매뉴얼 방식의 문제를 우회할 수 있으며, 신속하게 실질적인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미 모두에게 유용한 방식이 될 수 있다.

 

 시퀀스 방식에 있어서 선행조치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궁극적 목표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실질적 임기인 2020년 말까지 핵심대상의 폐기시간표를 약속하는 것이다. 방대한 북한 핵프로그램과 기술적 문제를 감안했을 때 단기간 내 완전한 비핵화는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핵무기 및 제조시설 등 핵심분야를 대상으로 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비핵화는 가능하다.

 

 비핵화의 절차와 대상을 구체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질적 비핵화가 완료되었다는 평가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미래핵, 현재핵, 과거핵의 핵심부분이 완전하게 폐기되어야 한다. 이미 폐기절차에 돌입한 미래핵에 이어 영구 폐기의사를 밝힌 영변의 원자로와 재처리 및 농축시설과 아울러 은닉된 농축시설과 ICBM급의 주요 제조시설에 대한 비핵화 조치도 필요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생산된 핵물질과 핵탄두, ICBM 등 과거핵의 상당부분을 조기반출 또는 폐기하는 프론트로딩의 실행이다. 프론트로딩의 대상이 북한 핵능력의 전모가 아니라는 점에서 미국의 상응조치가 수반될 경우 북한도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이다. 프론트로딩은 사실상 북한의 진정성과 비핵화 프로세스의 순조로운 이행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큰 관건이 될 것이다.

 

 비핵화 프로세스에 상응하는 체제보장 및 보상조치의 시퀀스도 중요하다.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과 보상은 종전선언과 단계적 제재해제, 그리고 평화협정 체결의 순서가 될 것이다. 종전선언으로 비핵화와 한반도평화체제 구축의 입구가 마련될 경우 평화협정으로 가는 협상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영변핵시설 영구 폐기의 시작 또는 과거핵 폐기가 명확해지는 상황에서는 대북제재의 단계적 해제를 통해 비핵화를 견인해야 할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은 핵심분야의 북한 비핵화가 실질적으로 완료되었다는 판단이 섰을 때 가능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평화협정 체결은 핵심분야 비핵화조치의 완료와 북한 핵프로그램 전모의 투명한 공개를 의미한다. 남은 과제는 잔여 핵프로그램의 중장기적 비핵화조치가 될 것이다.

 

 시퀀스 방식은 북한 핵의 전모에 대한 투명한 조기 비핵화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의 차선책이다. 시퀀스 방식의 신뢰성은 각 단계를 구성하는 비핵화 조치들이 독립적으로 북한 핵프로그램에 불가역적이고 영구적 손상을 주는 형식을 통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이 전제되어야 하며, 핵심분야의 비핵화로 북한의 전략적 핵능력과 핵위협이 신속하게 실질적으로 제거될 수 있다는 확신과 신뢰가 필요하다.

 

한국의 운전자 역할은 멈출 수 없다

 

 비핵화를 위한 협상의 테이블에서 북·미 모두 일방적 승리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다. 북한은 비핵화를 향한 확고한 신뢰를 입증해야 하며, 미국은 일방적 압박과 제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비핵화의 실질적인 진전을 도모해야 한다. 실용적 관점에서 한반도 비핵·평화체제구축 프로세스를 진행해야 할 것이며, 시퀀스 방식의 비핵화는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퀀스 방식의 북한 비핵화과정에서 한국의 운전자 역할은 중요하다.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는 것은 지루한 시간이 될 것이며, 북·미간 신뢰의 형성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비핵화의 단계마다 이견이 부각될 가능성도 상존한다. 지난 5월과 8월 북·미 정상회담과 폼페이오 장관 방북 연기로 초래된 북핵 협상 교착국면에서 보여준 한국의 운전자로서의 역량이 향후에도 필요한 이유이다.

 

 비핵화 및 평화체제구축 단계와 연계하여 지속가능한 새로운 남북관계를 형성하는 노력을 경주하는 것도 우리의 과제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의 전략적 목표는 비핵·평화체제를 기반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남북협력의 시대를 개막하는 것이며, 이를 기반으로 중장기적인 통일로드맵을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반도와 동북아에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대로 역내 국제정치구도의 근본적 변화에도 대비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태평양전쟁에 대한 미완의 전후처리에 기반을 둔 동북아 국제질서, 즉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새로운 신안보질서로 전환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동북아 신안보질서 형성과정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한국의 국가이익을 구현하기 위한 신국가전략을 모색할 때다. 한반도가 열강의 패권경쟁 속에서 표류했던 구한말의 아픈 기억을 성찰하고 시공간을 보다 길고 넓게 내다보면서 국가발전을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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